2025년 11월에 공개하는 4부작 다큐멘터리 ‘괴물의 시간’은 단순한 범죄 재조명이 아닌, 한국 사회가 마주한 ‘악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프로그램은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총출동해,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괴물성과 사회가 만든 악의 구조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다큐멘터리적 구성과 사회학적 메시지가 결합된 ‘괴물의 시간’은 단순한 범죄 기록을 넘어, 우리 모두가 어떤 사회 속에서 괴물을 만들고 있는지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괴물의 시간’의 제작 배경과 의도
SBS 다큐멘터리 ‘괴물의 시간’은 오랜 세월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연쇄살인범 이춘재 사건을 중심으로, 인간 내면의 어둠을 조명한다.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단순히 범죄의 재구성이 아니라, “악은 어떻게 태어나며 사회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 500여 회의 경험이 응축된 이번 프로젝트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한국 범죄사와 미해결 사건들의 맥락을 함께 다룬다. 연출진은 사건의 재구성보다 ‘악의 진화’와 ‘사회적 공범의 존재’에 집중했다. 특히 ‘괴물의 시간’은 시청자가 단순한 공포나 분노에 머물지 않도록, 인간이 어떻게 괴물로 변모하는지를 심리학적·사회학적 관점에서 서사화했다. 제작진은 인터뷰, 실사 영상, 범죄 현장 재현 등을 통해 사실감을 극대화하면서도,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기 위해 심리적 거리두기 촬영 방식을 택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이춘재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만든 사회의 문제”라는 메시지다. 다큐는 그가 성장한 환경, 당시 사회 구조, 미디어의 반응 등을 교차 분석하며 ‘괴물’이 만들어지는 사회적 조건을 탐구한다. 이는 단순히 한 범죄자의 기록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어두운 거울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연쇄살인범 이춘재의 실체와 ‘괴물’의 상징성
‘괴물의 시간’이 집중 조명하는 인물은 한국 최악의 연쇄살인범으로 불리는 이춘재다. 그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화성 지역에서 15건의 살인과 30건이 넘는 강간을 저질렀다. 그러나 범행 당시에는 단 한 건도 확정되지 못했고,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2019년 DNA 재분석을 통해 그의 범행이 확인되면서, 한국 사회는 다시 한번 충격에 휩싸였다. 다큐는 이춘재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다. 제작진은 그의 주변 인물, 당시의 사회 환경, 지역의 경제적 빈곤, 교육 부재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괴물’은 어느 날 갑자기 태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억눌린 욕망, 왜곡된 가족 구조, 사회적 고립이 그의 폭력성을 자극했고, 결국 인간성을 잃은 괴물로 변모하게 만들었다. 이춘재의 범행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시스템의 실패이기도 하다. 경찰의 수사 한계, 사회의 편견, 언론의 선정적 보도 등은 또 다른 ‘괴물의 환경’을 조성했다. ‘괴물의 시간’은 이 모든 요소를 하나의 퍼즐처럼 맞추며, “괴물은 사회의 그림자이며, 사회가 그를 낳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특히 이 다큐는 이춘재의 자백 이후에도 여전히 남은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을 생생히 담았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중심에 두면서, 그들이 사회적 망각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범죄 재현을 넘어, 한국 사회의 기억과 책임을 되묻는 인간적 접근이다.
‘괴물의 시간’이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와 미디어의 역할
‘괴물의 시간’이 단순한 범죄 다큐멘터리와 다른 점은 바로 ‘사회적 반성’의 초점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이춘재라는 극단적 인물을 통해 한국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를 비춘다. 첫째, 미디어의 역할이다. ‘괴물의 시간’은 과거 언론이 범죄를 소비하듯 다루던 보도 행태를 비판하며, 언론의 윤리적 책임을 강조한다. 자극적인 기사 제목과 선정적 인터뷰는 피해자와 가족에게 2차 가해를 불러왔고, 사회는 ‘괴물’의 이야기에만 집중했다. SBS 제작진은 이번 작품에서 카메라의 시선을 ‘피해자 중심’으로 전환해, 미디어의 시각 교정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보였다. 둘째, 사회적 무관심의 문제다. 프로그램은 “괴물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자란다”는 주제를 중심에 두고, 당시 이웃과 학교, 지역사회의 방관을 조명한다. 이는 단순히 과거 사건을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학교폭력·디지털 성범죄 등 현대적 범죄의 근본 구조와도 맞닿는다. 셋째,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이다. 제작진은 이춘재의 인터뷰 일부를 인용하며 “나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는 말을 통해, 공감 능력을 상실한 인간의 공허함을 보여준다. 이는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 개념을 연상시키며, 시청자에게 인간 내면의 어두움을 성찰하게 만든다. 결국 ‘괴물의 시간’은 범죄 자체보다 우리 사회가 악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범죄자에 대한 단죄보다, 그를 낳은 사회적 책임을 논의하는 것이야말로 이 다큐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다.
‘괴물의 시간’은 단순히 이춘재라는 한 개인의 범죄를 되짚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이 작품은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의 탄생을 기록하며, 우리 모두에게 “당신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트렌드 중심의 미디어 환경 속에서 자극적인 범죄 소비가 늘어나는 오늘, ‘괴물의 시간’은 언론의 책임과 사회의 자성을 동시에 요구한다. 악은 멀리 있지 않으며, 침묵과 무관심 속에서 자란다.
2025년의 시점에서 ‘괴물의 시간’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다시는 같은 괴물을 만들지 않기 위한 경고문으로 남는다.